Oct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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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후기] 골드만삭스 Equity Research - 5편-8편 몰아보기
골드만삭스 Equity Research - 5편 Citi Research 인턴면접
노무라에서의 3개월이 흐르고, 여전히 컨설팅이라는 직업에 큰 매력을 느꼈던 나는, 인턴경력1 + USCPA + CFA레벨2 라는 스펙을 들고 MBB 인턴 뚫기에 나섰다. 그리고 예상대로 척척 베인앤컴퍼니의 정규인턴포지션 1차면접을 보러오라는 연락을 받았고, 이어 2차면접도 진행이 되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결과는 탈락. 나는 무려 3일을 누워있었다. (아마도 내 인생 마지막으로 아팠던 경험인 것 같다)
하지만 하나의 문의 닫히면 하나의 문이 새로 열리는 법. 당시 주식리서치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른 상태에서 지원한 씨티글로벌마켓에서 연락이 왔던 것이다. 그 당시만해도 무조건 IBD만 외치고 있는 상황이였고, 그래서 조금은 시큰둥하게 갔지만, 하우스가 좋은 하우스인지라 긴장은 여전히 되었다.
면접은 너무나도 평온하게 이루어졌다. 10년차쯤 되어보이는 애널리스트 1명과, 나보다 2-3살 정도 많아보이는 쥬니어 1명. 하지만 이상할정도로 나에게 주어지는 질문들은 테크니컬한 질문들보다는, 상식에 가까운 Fit 질문들 위주로 이어졌고, 그러면 변별력을 도대체 어떻게 판단할지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 쯤, 나는 다른 방에 있는 컴퓨터 앞으로 안내되었다.
그렇다. 말로만듣던 모델링테스트. 전혀 준비하지 못했는데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손이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불합격을 떠나서 아무것도 못하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았다. 내 눈앞에 놓여진 300줄 남짓의 복잡한 재무정보와 중간중간 생겨있는 구멍들... 나에게는 1시간동안 그 구멍들을 채우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하지만 정말 신기하게도, 내가 채우지 못할 문제들이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딱 한가지, GPM / OPM / NPM이라는 것을 채우는 빈칸이 있었는데, 이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마감 직전에 뜻에 대해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알고보니, Full로 구성되어있는 모델링 시험이 아닌 간소화된 시험이었다 :) 결과적으로는 차트를 그리는 임무를 끝까지 완수하지 못했다. OP랑 OPM을 한 차트에 하나는 바차트로 하나는 라인차트로 그리는 문제였는데, Secondary Axis로 옮기는 법을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엽지만, 그 당시 내 마인드는, 이걸 누가알아? 했던거 같다.
면접이 끝나고, 나는 떨어지더라도 별 미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지하철에 올랐다. 아니, 사실은 나는 여전히 컨설팅지망생이였기 때문에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일주일, 이주일이 흘러서 나는 불합격을 직감했고, 이후 다시 컨설팅 인턴 준비모드에 돌입했다. 그러나 어느 오후, 거짓말처럼 연락이왔다. 사실 모델링시험에서 나는 2등을 했는데 (1등은 차트까지도 완벽히 그렸다고 한다), 1등이 다른 회사에서 일하게 되어서 나를 뽑는다고...
되돌아보면 정말 운명과도 같은 순간이다. 투자은행과의 첫 만남이기도 했지만, 훗날 나를 골드만삭스로 이끌어준 은인과도 만날 수 있게된 순간이였고,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행운이었다. 행운이든 인연이든 이 이후 내 커리어는 완전 바뀌게 다. 씨티에서의 인턴생활은 너무나도 힘들었지만.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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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 Equity Research - 6편 Citi Research 인턴 출근 첫날 (feat. Citi Conference)
리서치부서 팀원들과의 첫 만남은 굉장히 특이하게 이루어졌다. 공식적인 첫 출근날짜가 아닌, 2주일정도 전에 Conrad호텔에서 열린 Citi Conference에서, 나는 통역알바를 진행하게 되었다. 전 세계 투자자들이 여의도에 모이고, 국내 유수의 기업들의 CFO 및 IR팀들이 모두 참석하는 대규모 컨퍼런스였다. 50개가 넘는 기업들이, 삼성전자부터 정말 들어본적 없는 의료기기회사까지 참가하였다.
거기서 나의 임무는 통역. 한국어를 못하는 외국인투자자들과, 영어를 못하는 기업쪽 직원이 있으면 그 둘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할하게 돕는 역할이었다. 영어를 평생 해놨지만 통역을 해본경험도 없었고, 특히 업계지식이나 금융용어에 아직은 서툴렀던 나는, 그 누구보다 긴장을 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긴장과는 별개로, 막 대학을 졸업한 사람에게 여의도의 5성급호텔은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다. 로비부터 향, 엘레베이터에 나오는 오묘한 음악까지. Citi직원들을 위한 대기실에 들어섰을 때 놓여있는 온갖 다고들과 음료, 기가막히는 한강 view까지... 영화에서보던, 내가 지금껏 공부하면서 꿈꿔온 순간이 눈앞에 펼쳐진 순간이었다. (여담이지만, 그날 대기실의 TV에는 블룸버그가 틀어져있었는데,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탄핵되는 바로 그 순간이 송출되고 있었다.)
황홀한 대기실을 떠나 내가 담당하게될 미팅장소로 향했다. 첫 미팅이 누군가 봤더니, 투자자쪽은 무려 그 유명한 Fidelity. 한국기업은 아주아주 빵으로 유명한 그 누구나 아는 빵만드는 프랑스업체 같은 이름을 쓰는 그회사였다. 첫 미팅부터 VVIP를 통역하게 되다니... 하지만 다행히 소비재산업쪽이라서 모르는 이상한 용어가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미팅의 주요 내용을 살짝 말하자면, 결국에는 우리회사 좋으니까 투자많이하라는 내용이다. 뭐하는 기업이고, 최근에 성과지표들이 어땠으며, 이런점들이 앞으로 많이 기대가 되니까 투자하라는 내용을 간단하게 발표했다. 그리고 나서는 대부분의 시간이, 투자자들의 Q&A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신기했던 점은,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정확히 비슷한 flow로 비슷한 질문들을 했다는 것이다.
세 번째 미팅에는 일본인 투자자가 들어왔는데, 영어를 잘 하지 못한 기억이 난다. 그래서 최대한 천천히, 쉬운 단어들로 통역을 했지만, 그래도 잘 못알아들을 때는 일본어를 조금 섞어서 통역을 해줬다. 지금껏 언어에 투자한 시간들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반대로 일본인이 일본어로 질문을 했는데, 그걸 못알아 들어서 아찔했던 순간도 기억난다.
한 투자자는 회사의 설명을 듣더니 20분만에 미팅을 끝내고 나가버렸다. 너네회사 따위에 시간을 쓰지 않겠다는 듯이. 어떤 투자자는 아예 미팅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나야 좋았지만... 컨퍼런스에 참가한 어떤 분은 내가 본 사람중에 거의 Top급의 미모를 가지신 분도 있었다. 드라마에서 성공한 CEO나 그런 케릭터로 나올꺼같은, 그냥 아우라가 있는 분. 아 진짜 세계적인 금융회사들에서는 저 정도 외모는 되어야 영업을 하는구나 싶었다. (아직도 그분이 도대체 어느 회사의 어떤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을지 궁금하다)
아무튼 이렇게 IB에서의 내 첫날은 이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황홀함과 뿌듯함, 긴장과 피곤함을모두 느낀 첫날, 그리고 둘째날과 셋째날까지도 이 경험은 이어졌다. 다행히 큰 실수없이, 무난하게 일은 마무리되었고, 나는 이제 2주뒤 있을 출근을 마음 편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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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 Equity Research - 7편 Equity Research 인턴의 하루 (Citi)
누군가가 나에게 그랬다. 주식리서치 부서의 워라벨은 그나마 좀 견딜만 하다고. 하지만 이 모든 희망은 출근 첫날부터 깨져버렸다. 아직도 기억나는 그 한마디. 오늘은 좀 일찍 한 9시에나 가~ 크크크 역시나 인생에 쉬운건 없었다. 더더욱 힘들었던 것은 출근시간이 무려 아침 7시라서, 인턴이였던 나는 거의 아침 6시반까지는 출근을 미리 했었기 때문에, 하루가, 특히나 오전시간이 매우 길게 느껴졌었다. 나의 하루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오전 6시 30분 - 출근
컴퓨터를 킨 뒤, 바로 간밤의 뉴스를 확인한다. 네이버를 통해서 국내뉴스 한번, 구글 및 각종 정보소스들을 통해서 해외뉴스도 한번. 본인이 담당하는 섹터만 담당하면 되었고, 사실 나는 제약/바이오를 서포트해서 원래는 뉴스가 많지 않았지만, 자동차/조선 RA가 그만두는 바람에, 그쪽일도 도와주게 되었다. 그리고 뉴스는 영문으로 요약되었다. 제목과 뉴스링크, 그리고 뉴스에 대한 영문요약 3줄. 그 간단한 작업이 왜 그렇게 어렵고 힘들던지... 경제섹션의 기사를 좋은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쉬운일이 결코 아니다.
오전 7시 30분 - 모닝미팅 / 커피타임
장이 열리는 날의 아침이면, 모닝미팅이라는 것이 이루어졌다. 전날 리포트를 발간한 애널리스트들이 한명한명 요약발표를 하였고, 간단한 Q&A가 이어지는 세션이였다. 이 또한 상당히 고급(?) 영어가 쓰였다 (그 당시 소감). 특히 트레이더들의 발표는, 아주 간결하고 깔끔하고 명확했다.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발표가 끝나면,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거나 커피, 흡연자들은 담배타임을 가졌다.
오전 8시 30분 - 오전업무
업무가 본격 시작되었다. 나의 업무는 주로 새로운 주식에 대한 커버리지 in-depth 리서치를 하는 일. 시장조사부터 회사에 대한 것들까지, 굉장히 폭넓은 리서치가 이루어졌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국내 성형외과 100곳에 전화해서 보톡스 시술가격을 파악하는 것. 간단한 작업이였지만, 이는 당시에는 국내 최초로 행해진 일이였다. 간단한 리포트 본문내용을 영문으로 작성하는 작업도 하게 되었다. 물론, 앞쪽의 중요한 내용들보다는 뒷쪽의 백업이나 부록과 같은 페이지들의 내용이였지만, 매우 조심스럽게 써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오전 11시 30분 - 점심
아침이 일찍시작되다보니, 점심도 상당히 이른시간에 이루어졌다. 간단한 것을 사와서 먹을때도 있었고, 나가서 먹을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껏 커리어에서 가장 여유있게 식사를 했던 것 같다. 식사 시간으로 보나, 나가서 먹는 빈도로 보나.
오후 12시 30분 - 오후업무
가끔은 투자자들이 한국에 오면, 통역업무를 하러 가기도 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모 화학회사의 통역을 하러가야해서, 아침부터 무지 긴장하고 각종 화학용어들을 폭풍 공부해갔는데, 막상 화학용어들은 다 영어라서, 특별히 어려움이 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 외의 외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인턴으로써는 제한적이였다.
오후 6시 30분 - 저녁
저녁은 장이 끝나고 나서라서, 훨씬 여유로운 식사가 가능했다. 특히 당시 무려 3만원이라는 파격적인 식대 덕분에, 말도 안되는 3만원짜리 중식세트라든지, 당시로써는 신세계였던 MAMAS에서 센드위치를 먹거나 했던 것 같다. 물론 배달도 많이 시켜먹었고 말이다.
오후 7시 30분 - 저녁업무
숫자/데이터를 정리하는 작업도 꽤 많이 시켜주셨다. 물론, 지금생각하면 저질인 나의 엑셀실력과 (그래서 그렇게 지금 학생들에게는 엑셀을 좀 엄하게 가르친다), 제한적인 모델링 스킬로 인해서 업무를 제대로 할리 없었다. 내 바로 위 사수인 과장님이 너무너무 좋은분이였기에 망정이지... 당시 블룸버그터미널도 처음으로 접해보았다. 너무나도 다른 인터페이스에, 온통 모르는 단어들은 정말 나를 환장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후 10시 30분 - 퇴근
퇴근시간이 꼭 10시 30분은 아이였지만, 평균 이정도였던 것 같다. 사실 당시는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그 시간에만 퇴근해도 너무너무 몸이 녹초가 되어있었다. 뭐... 나중에 더 최악의 워라벨 3,4,5번 타자들이 대기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퇴근 후, 보통 나는 운동을 하거나, 잠을자기 바빴다. 자기개발? 그런건 없었다.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일단 3개월을 버티는게 목표였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사실 인턴하는 친구들이 주말에 시간내서 수업들으면 너무너무 기특하고 대견하다.
하지만 늘 기억은 미화되는 것일까, 요즘은 가끔 씨티에서의 시간들이 많이 그리울 때가 있다. 그 이후에 더 최악을 많이 경험해서 그런걸까, 아니면 그 당시 사람들이 다들 잘해줘서 그런걸까. 힘들었던 기억도 많지만, IB에서의 첫 인턴은 온갖 설렘과 새로움으로 가득찬, 마치 대학에 처음 들어간 새내기와 같은 느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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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삭스 Equity Research - 8편 Citi Equity Research 인턴을 마치고...
Citi에서의 3달은 사실 굉장히 힘들었다. 근무강도가 힘들었다기 보다는, 뭔가 모를 압박감, 하루하루 뭔가 평가받는듯한 긴장감이, 잘 보여야한다는 긴장감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결코 사람들이 나를 힘들게 했던건 아니다. 어쩌면 내 자신이 잘하고 싶어서, 스트레스 받았을 것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당시 너무나도 준비가 안된상태로, 조금은 운좋게 너무 좋은 자리에서 일을 해본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3달도 굉장히 길게 느껴졌고, 인턴이 끝날무렵 나는 새로운 인턴을 바로 이어서하려고 하기보다는,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으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나는 약 2주간 북유럽을 여행하게 되었다. 여행하면서 내린 결론은, 역시 나는 컨설팅을 해보고싶다는 마음이였다. IB는 너무나도 숨막힌다는 결론을 내렸기에, 컨설팅 회사, 노무라 말고 MBB 중 한곳에서 인턴을 해봐야 판단이 설 것 같았다. 게다가 3개월간의 빡신(?) 트레이닝으로 이제는 더더욱 일을 잘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다시 내 커리어트랙은 컨설팅을 향하게 되었고, 인턴공고가 뜨는대로 BCG와 Bain (Mckinsey는 인턴을 뽑지 않았으니)에 폭풍 지원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말 이상할정도로 서류에서 떨어지고, 전화인터뷰가 잡혀도 떨어졌다. 솔직히 나정도면... 떨어뜨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너무나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나중에 뽑는 입장이 되어보니, 아마도 단순히 늦게 지원해서 이미 뽑혔거나, 아니면 정말 MCSA처럼 좋은 동아리의 자원이 있었거나 했을꺼라 생각한다).
그렇게 매일매일 인턴 채용공고 게시판을 스캔하던 중, 눈에 들어온 채용공고는, 그 악명높던 Credit Suisse IBD 채용공고. 솔직히 IBD는, 게다가 Credit Suisse는 워낙 유명한 회사라서 한번쯤 꼭 일해보고 싶었다. (아마도 내가 유럽에서 잘 놀고와가지구, 기억이 많이 희석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때까지만해도 나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지원하고 1주일 반쯤 지나고 인연이 아닌가보다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급하게 전화 한통이 02로 시작하는 번호로 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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